제일영도교회는 1896년 두 사람의 서양 선교사 목사인 ‘로세영(Cyril Ross)’과 ‘사보단(Richard H. Sidebotham)’의 주재하에 김치몽(金致夢)이라고 하는 사람의 집을 헐어서 마련된 장소에서 설립자 김치몽 외에 두 가정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설립 예배를 드림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부산에는 초량교회와 부산진교회가 세워져 있었고, 근처에는 이 교회들을 세운 북 장로교와 호주장로교 선교지부(misson station)가 있어서, 이들 선교회에 속한 선교사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해나갔습니다. 그러나 당시 인구가 별로 많지 않았고, 외딴 섬에 불과했던 영도 땅은 이런 선교사들의 주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영도 밖에 있는 선교사들이나 기관의 도움 없이 제일영도교회는 김치몽과 갓 신자가 된 영도 사람들의 힘만으로, 교회로서의 제반을 갖추어 나갔습니다.
교회가 발족한 지 1년 후인, 1897년에 북 장로교의 파송을 받은 로세영 목사가 부산에 왔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899년 9월에는 동 선교부 소속의 사보담 목사가 부산으로 왔습니다. 이 두 선교사를 모신 가운데 그동안 제대로 된 설교의 말씀 없이, 신앙의 생명력을 이어오던 제일영도교회의 감격 어린 주일예배가 드려지게 되었습니다.